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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역시 전략가였다. (사진: 민주통합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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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역시 전략가였다. 1997년 국민의 정부 탄생에 이어 2002년 참여정부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대표는 19대 총선을 통해 정치 일선에 복귀한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로드맵대로 당을 이끌며 대선 정국의 7부 능선을 넘고 있다는 관측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로의 총선 출마를 결심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앞에서 가진 출마기자회견에서 “당선될 경우 당권주자 또는 대선주자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디트뉴스24>의 질문에 “일선의 정치를 마쳤기 때문에 후배들이 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며 “세종시 선거에서 이겨 정권교체에 일조하겠다. 당권이나 대권에 관심을 가지고 출마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출마선언 초기 “후배들 지원” 뜻 밝혔던 이해찬…‘역할분담론’ 먹혀
그러나 6선에 성공하면서 거취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그는 ‘역할분담론’을 내세우며 호남 출신 박지원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 5월 4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대표는 또 충청권 의원들의 적극적인 권유 등에 힘입어 당권도전에 나섰다. 그는 김한길 후보의 거센 추격에 역전을 허용하며 대세론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6월 9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불과 0.5% 득표율 차이로 김 후보를 누르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특히 친노(親盧)진영의 대표주자로 나선 문재인 후보가 순회경선 끝에 16일 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되면서 이 대표의 1단계 대선 구상이 완성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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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에게 남겨진 최대 과제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라는 분석이다. (사진: 민주통합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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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때마다 ‘나눠먹기’라는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원내대표 경선과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그랬다. 특히 모바일투표 등 경선룰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 확산되면서 ‘당 대표 책임론’과 ‘2선 후퇴론’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끝에 ‘영남 대선후보-충청 당 대표-호남 원내대표’라는 최적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된 것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만 남겨 둬…이해찬 역할론엔 이견 엿보여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가 이 대표에게 남겨진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될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경선 초기만해도 안 교수와의 단일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해 왔으나 당 내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최근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 대표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충청권 핵심 인사는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이-박 담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호남이 배제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대선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총선출마에서부터 당권도전에 이르기까지 이 대표가 사심으로 한 게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 교수의 단일화에도 이 대표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불공정 경선 논란 등) 당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진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단일화 과정에서는 (이 대표가 아닌) 문 후보가 직접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