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보면 DJ조문정국이 보인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던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 끝내 눈을 감은 것이다. 불과 석 달 만에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잃은 대한민국 정치는 천명공주의 죽음을 그린 드라마 “선덕여왕”의 조문정국과 닮아 있다.
두려움의 정치, 하늘의 뜻 이용한 쇼맨십 쌍둥이 동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유신랑, 알천랑과 함께 덕만을 찾아 나선 천명공주.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독화살이었다. 천명공주의 죽음은 기세등등하던 미실에겐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최대 위기를, 코너에 몰린 덕만에겐 운명을 뒤바꾸는 대반전의 계기를 안겨준다.
덕만은 유신랑의 만류를 뿌리치고 황궁이 있는 서라벌로 향한다.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주의 신분을 회복해 미실을 쓰러뜨리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만은 미실을 겪어봤다. 첩자로서 미실이 추구하는 ‘두려움의 정치’를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낀 그녀에겐 도망이 능사가 아니었다.
두려움의 정치란 무엇인가? 언젠가 미실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저자거리에 이 미실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들어봤느냐? 헌데 그 소문들도 다 내가 퍼뜨린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이 권력자에게 유리할까? 이것이 바로 미실의 셈법이다.
미실은 “정치를 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거나 아니면 두려움으로 위협해야 한다.”고 여긴다. 허나 백성의 삶이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 년 후에나 고단하고 힘겹긴 매한가지. 그 요구를 다 들어주려면 밑도 끝도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그녀의 입장에선 두려움이 훨씬 더 유용한 권력 도구인 것이다.
미실은 자신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가장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린다. 미실이 이용한 하늘의 뜻은 천기, 즉 비가 내리고 월식이 일어나는 이치다. 이는 사다함의 매화라 일컬어지는 당대의 가장 정확한 책력을 입수해 연구한 결과. 그 여세를 몰아 일식 카드까지 꺼내든 천신황녀 미실을 누가 막아낼 것인가?
두려움은 그렇게 조작되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미실이 말한다. “두려움을 이기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도망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덕만은 분노의 칼을 뽑아든다. “하늘의 뜻을 이용해 백성을 속이고, 그 두려움을 이용해 백성을 착취하는” 미실을 무너트리고자 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눈을 뜨는 순간! 사실 덕만에게 반격의 기회를 준 것은 미실 자신이다. “이 미실은 하늘을 이용하나, 하늘을 경외치는 않는다. 그것이 미실이다.” 오만과 독선이 하늘을 찌르는 멘트. 천명공주의 경고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천의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무르지 않지요. 그러니 자만하지 마십시오.”
천명공주의 사후 전개되고 있는 조문정국은 바로 이 미실의 오만과 독선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딸을 잃은 마야황후가 미실에게 일갈한다. “너 역시 죽을 것이다. 비석도 없이, 무덤도 없이, 흔적도 없이 죽으리라. 역사에 너의 이름은 단 한 글자도 남지 않으리라.” 비통한 마음은 표적을 찾기 마련.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앞세운 현실의 민심 역시 마야황후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 분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한 집권세력, 고인의 표현을 빌자면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 위기를 초래한 현 정권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으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민주국가에선 민심이 곧 천심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취임식에서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촛불집회 검거열풍, 미디어법 강행처리, 용산참사 등 오만과 독선이 번뜩인다. 천명공주의 죽음이 미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전직 대통령 서거도 현실판 두려움의 정치에 제동을 걸까?
인동초 외길이 남긴 미완의 유산 외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일제히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위대한 인물 서거”라는 뉴스를 긴급 타전했다. 고인은 이념과 지역, 여야를 뛰어넘어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당리당략을 떠나 고인의 유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돌파구 말이다. 특히 민주당을 비롯해 고인의 민주화 여정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어깨가 무겁다. 덕만이 알천랑의 자결을 막으며 이른 말.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살아서 네 오욕과 절망, 자괴감을 견뎌 내거라.” 상주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그 마음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크게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뜻을 받드는 길이다.
고인의 삶은 ‘인동초(忍冬草)’처럼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제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으로, 국민의 삶 속에 뿌리내릴 것이다. 고인의 꿈인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나라”는 우리 모두가 물려받은 미완의 유산이 아닐는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권해인 ㅣ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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