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고 남은 붉은 재 쓸쓸히 띄워 보냅니다 |
전북 고창 문수사·선운사 단풍 |
지난 밤 꿈자리를 어지럽히며 불던 바람에, 급작스러운 폭설에 혹시 문수사 숲길에서 만났던 새빨간 단풍은 그만 다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선운사 앞의 도솔천에 떨어진 단풍잎도 눈으로 다 뒤덮이고 말았을까요. 지난 주말 전북 고창의 문수사와 선운사에서 단풍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좀 늦었으려나 했지만, 문수사로 드는 길의 단풍색이 어찌나 곱고 선명하던지, 선운사 도솔천 앞의 단풍에 붙은 불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좀 더 오래 가을을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전북 고창을 찾아간 것은 문수산(일명 청량산·620m) 중턱의 절집, 문수사의 단풍나무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혹 아시는지요. 문수사 단풍나무 숲이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을. 우리 땅에서 유일하게 단풍나무 숲으로 천연기념물이 된 곳이 이곳 문수사 단풍나무 숲길이랍니다. ‘단풍에 관한 한’ 백양사나 내장사도 문수사에는 어림도 없는 셈입니다. 낯선 절집인 문수사의 단풍나무 숲만 어찌 천연기념물이 됐을까요. 그건 그 길을 걸어보면 단박에 알게 되는 일입니다. 절집으로 드는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100m쯤 되는 짧은 길에 최소 100년생부터 최고 400년생 거목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빼곡합니다. 나무마다 붉고 노란 단풍을 매달고 있습니다. 가지를 부챗살처럼 펼치고 붉은 잎을 달고 있는, 오래 묵은 단풍나무의 위세는 화려하고도 당당합니다. 문수사의 단풍숲길이 특별한 것은 무엇보다 한적하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전국의 이름난 단풍 행락지는 몰려든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문수사는 적적할 정도로 찾는 이들이 없습니다. 적막한 숲길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뿐이어서 쓸쓸하기까지 하답니다. 고창에서는 선운사도 빼놓을 수 없지요. 선운사라면 서정주 시인의 시 ‘선운사 동구’에 나오는 ‘막걸릿집 육자배기 가락에 목이 쉬어 남아있는’ 동백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만 가을 단풍도 봄 동백 못지않습니다. 서정주의 시처럼, 고창은 동백도 늦고, 단풍도 늦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탓에 내륙지방보다 평균기온이 3도쯤 높기 때문입니다. 올해 단풍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곳들의 단풍이 다 지고난 이제야 문수사의 단풍도, 선운사의 단풍도 막바지 절정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창의 문수사와 선운사가 올가을의 마지막 단풍을 아쉽게 배웅하는 데 적당합니다. 혹시 이번 주에 고창의 문수사를 찾아간다면 단풍은 이제 다 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운사 단풍도 문수사의 것보다는 좀 더 오래 가겠지만, 그것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단풍이 다 진들 어떻습니까. 서걱서걱 발 밑에 깔린 낙엽을 밟는 맛으로도 이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지 싶습니다. 고창에서는 또 ‘소리’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고창읍성의 성곽을 따라 걸으면 성곽 곳곳에 설치해놓은 스피커를 통해 춘향가 한두 대목쯤은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의 고장’인 고창에는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작가인 신재효가 있습니다. 각 고을의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의 후원자였던 신재효. 당대의 동편제와 서편제 거장들이 죄다 그의 문하를 거쳤다는군요. 그의 자취를 따라가다 최초의 여류명창이었던 진채선과의 드라마틱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닿았습니다. 서른 다섯살의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은 결국 진채선이 전북 김제 어디쯤의 작은 암자에서 여승이 됐다는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그 이야기에 마음을 뺏겨서 물어물어 동호리 갯벌 인근의 진채선의 생가터까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전북 고창으로의 여정은 막바지 절정에 이른 단풍낙엽길을 걸으며, 또 쓸쓸한 사랑이야기를 따라가보며, 가을을 배웅하는 여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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