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장관의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 훨씬 전부터, 기자는 4년 전 ‘신행정수도 오적’(五賊)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계를 그 당시로 돌려 보면 아주 재미있는, 그리고 뜻 깊은 교훈 하나를 얻게 된다. 특히 그것은 자유선진당에게는 매우 뼈아픈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
4년 전, 신행정수도 성사 못 시킨 열린우리당이 육적에 합류한 사연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위헌판결 이후 ‘오적’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헌재, 조선·동아일보, 한나라당, 서울시장, 강남귀족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시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합류해, ‘육적’으로 늘어났다.
“신행정수도 제대로 만들라고 찍어줬는데, 뭐 하고 있는 거냐!”는 충청인의 분노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당시 충청권 거의 대부분의 의석을 열린우리당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들 의원들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용어였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 당시의 열린우리당과 지금의 자유선진당 사이에 분명한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투표를 통해 지역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성향’(충남대 정외과 박재정 교수의 주장)을 우리 충청인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지난 18대 총선은 충청인들에게 아주 단순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가능하면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지역 현안을 힘 있게 해결할 것이냐가 그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은 지역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지역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는 자유선진당의 후보를 당선시킬 것이냐가 두 번째다.
투표 통해 지역 이익 극대화 시키는 충청인을 선진당이 실망시킨다면?
결과적으로 충청인들은 두 번째를 선택했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면 그 이면에는 열린우리당의 교훈, 즉 힘 있는 집권여당 후보를 많이 당선시켰음에도 신행정수도 등 지역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이 같은 투표 성향을 보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꾸려진 자유선진당은 우여곡절 끝에 교섭단체까지 구성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충청권 현안 해결에 어떤 성과물을 내놓고 있느냐는 데 있다.
행복도시 이전기관 고시 지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표류, 수도권규제 완화 등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정책은 충청민을 갈수록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놓고 볼 때 자유선진당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누적·반복되면 “자유선진당으로는 안 되나봐”라는 생각이 충청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될 수도 있다.
최근 대전 출신인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이 잇따른 국책사업 유치의 실패 원인을 지역 정치권 및 국회의원의 정치력 부족 탓으로 돌려 파문이 일고 있다. 기자를 더욱 분노케 만드는 것은 충청권 언론에게도 “긁지 마라”는 말을 써 가며, 엄포를 놓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성과 못 낸 자유선진당…충청권 현안 해결에 사활 걸어야
전혀 다른 맥락일지 모르지만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박병석 의원(대전서갑)도 최근 “자유선진당이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그에 따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유선진당이 이 시점에서 명심해야 할 점은 충청인들의 판단은 언제나 냉혹하다는 사실이다. 언제든지 자신의 지지성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수 십 년, 수 백 년 동안 역사 속에서 얻어진 충청인들의 생존방식일 수도 있다.
4년 전 열린우리당이 육적에 합류하며 곤혹을 치렀던 경험을, 자유선진당 역시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지역 현안 해결에 좀 더 사활을 걸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