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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세상]선생님, 사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죠?

청룡검객 2017. 5. 23. 09:49

[공감세상 기고문] 한국성교육연구회

경복고 보건교사 김찬현

 “선생님, 여자 친구가 생리 중일 때 콘돔 없이 성관계를 했는데 임신 안 되겠죠?”, “제가 잘 못해서 여자 친구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조금은 당혹스럽지만 남자 고등학교에 발령 받은 지 1달 만에 여러 명의 학생들에게 들어온 성상담의 내용이다. 아직도 많이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하는 말이라기엔 믿기지가 않을 만큼 성인들의 대화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성적인 존재’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다소 수줍어하며 이런 고민을 교사인 나에게 조심스레 물어봐준 아이들이 어색하지만 또 고마웠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청소년들은 그 누구보다도 성적인 존재로써 성적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남성은 10대 때 성욕이 가장 높으며 여성은 이보다는 조금 더 늦게 20~30대에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성교육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성교육에 앞서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생물학적 성(sex)을 넘어서 성 지향성(sex orientation), 정신사회적 성(gender) 등이 통합된 섹슈얼리티(sexuality)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성은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발전시켜 왔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섹스가 무언인지 아나요?” 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씨익 웃어 보이며 “성관계요” 라고 대답했다.

  
▲ 요즘의 성

일반적으로 섹스를 성행위로 생각하지만, 그 뜻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생물학적 성에 대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조차도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성 정체성은 약 2세 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4세쯤이면 꽤 확고하게 형성된다고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고 그에 맞는 성 역할들을 부모나 사회를 통해 학습하기 시작한다.


이때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 보면 성인 여남의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놀이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성적 발달이론을 정립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리비도(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구강기에서부터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정신을 발달시킨다고 보았다.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도 리비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아이들이 마치 성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들을 하는 것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흔히 청소년들의 성관계에 대해 논할 때 “너희는 아직 책임을 질 수 없는 나이야.” 또는 “성관계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간에 할 수 있는 거야” 라고 가르치곤 한다. 혹시 이런 말들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선생님,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말이죠? 19세 까지는 책임을 질 수 없는데 20세 부터는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건가요?”, “선생님, 저는 제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하는데 그럼 성관계를 해도 되는 것인가요?”, “선생님, 사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죠?”


이러한 질문을 받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필자가 불과 10여 년 전 학생시절에 성교육을 하던 선생님께 가졌던 의문점 들을 아이들이 똑같이 질문해 온 것이다. 그때로부터 강산이 한번은 바뀌었을 터인데 관련된 지식들을 축적해 오면서도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성인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명확히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정답’만을 찾기를 추구해 온 것은 아닐까?


문득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여러분들은 언제부터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저는 혼전 순결주의자예요”, “전 20살부터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요” 등등... 아이들은 제각각의 생각들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공통적인 의견이 있었는데 ‘중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다 성관계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자 “별 이유는 없어요.”, “안 되는 이유가 딱히 없으니까요.” 라는 답변이 나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에 대한 가치가 변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지점이었다.


어떤 논쟁거리가 있을 때 우리는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이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내곤 한다. 그러나 성에 대해선 어떠한가? 아이들이 성에 대한 질문들을 해 올 때 터부시해왔을 것이다. 십여 년 전 ‘요즘 아이’는 교사가 되어 또 다른 ‘요즘 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화를 하면 할수록 드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청소년의 성에 대한 토론에 정작 청소년을 배제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소통의 가치’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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